
적벽대전 1부 정보
중화권 최고의 감독으로 인정받는 오우삼 감독이 할리우드활동을 잠시 내려놓고 중국영화계에 잠시 리턴하여 제작한 영화이다. 장편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전쟁 중 가장 크고 유명한 '적젹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다만 많은 부분이 소설의 내용과는 다르게 묘사되었다. 2008년 7월 개봉된 영화로 당시에는 아시아권 영화로는 상당한 규모인 8천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으로 규모와 캐스팅에서 가히 중화권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의상/미술 감독으로 와호장룡에서 오우삼감독과 작업을 했던 팀엽 감독이 맞았으며 한국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이와시로 타로'가 담당했다. 감독과 배우들 외에 스태프들도 최고의 인재들로 채워졌다. 최초 기획단계에서는 '주윤발' '배용준' '토요카와에츠시'를 캐스팅하여 아시아권역 영화로 기획되었으나 몇 번의 의견 조율과 계약관계로 무산되고 중국배우 위주로 캐스팅하여 제작되었다.
등장인물 및 배역
주연급 캐스팅으로 제갈량에 '금성무' 주유역에 '양조위' 조조역에 '장풍의' 유비역에 '우용' 손권에 '장첸' 조자룡역에 '호군' 관우역에 '파산찰포' 장비역에 '장금생' 등이 캐스팅되었다. 특히 손권역의 '장첸'은 최근 넷플릭스 영화 <수리남>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최초기획단계에서는 주윤발이 '유비' 배용준이 '주유' 토요카와 에츠시가 '조조'역에 캐스팅되었으나 무산되었다.
영화의 줄거리 및 전개
무너저 가는 한 왕조 한나라의 실세인 '조조'는 황재에게 남방 원정을 허락받고 유비를 쫓아 출정하게 된다. 이미 성을 빼앗기고 도망자 신세인 유비와 동생들 그리고 조자룡과 그들을 따르는 백성들은 정처 없는 떠돌이 신세를 면하지 못하던 중 조조의 군사들에게 공격을 당해 유비의 둘째 부인이 죽는 안타까운 일까지 겪게 된다. 조조응 여세를 몰아 유비는 물론 손권까지 제거하고자 오나라까지 침략하고자 한다. 이미 위나라, 촉나라를 패퇴시킨 조조는 이참에 삼국을 통일하려는 야망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조조'를 막을 수 있는 건 오나라의 주유의 군대와 제갈공명의 지략뿐이다. 그 둘은 합심하여 연합군을 만들고 침략하는 '조조'에 대항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그들 연합군의 숫자는 10만 '조조'의 군대는 100만이 넘었다. 밀려들어오는 '조조'의 군세에 연합군의 장수까지 '조조'군에 투항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점은 조조의 군대는 항복한 적군들 위주의 군사들로 내 나라와 가족들을 지켜내기 위해 하나로 뭉친 오나라 군사들의 결의를 이겨낼 수없었다. 점점 결전의 시간이 다가오는 중 생각지도 못하게 유비가 떠나겠다는 말과 함께 후퇴하고 만다. 이제 10만도 되지 않는 군대로 조조의 100만을 상대해야 하는 주유과 제갈량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적벽에 진을친 조조의 군대 바람까지 조조를 돕는 상황 그러나 제갈량은 바람은 결국 연합군을 도울 거라며 기도에 들어간다. 결사대를 조직하고 결전의 밤 오나라 군사들은 떡을 나누어 먹으며 결전의 의지를 드러낸다. 그때 하늘이 도운 것인가 제갈량의 기도가 통해서일까 바람이 바뀌었다 화공으로 대대적인 선공을 펼치는 오나라군사 그리고 후퇴한 줄 알았던 유비의 군대가 조조의 뒤를 치기 시작한다. 유비의 퇴각은 속임수였던 것이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10배의 수적 열세를 극복할 것인가.
흥행과 평가
중국정부의 지원과 올림픽에 맞추어 개봉하였던 영화 적벽대전 이전에 볼 수없었던 어마어마한 제작비와 캐스팅 스태프로 엄청난 글로벌 흥행을 기대했으나 너무 중국식 부풀리기와 현실적이지 못한 가히 신화 같은 내용으로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흥행에 참패하고 만다. 영화의 스펙터클한 장면은 보는 관객들에게 충분히 흥미를 유발하고 재미를 주기에 충분했으나 거기까지였다. 특히 영어권 국가와 서방에는 아시아의 액션 사극정도로 인식될 뿐이었다 다만 한국에서는 중국영화 중 최고의 흥행을 하였으나 실재 관람객 숫자는 157만 명으로 상당히 저조한 기록이다. 다만 이후 제작된 2편은 이보다는 좀 더 많은 260만 명의 관객이 들어 1, 2편 합계 500만 명을 간신히 넘겼다.